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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현 칼럼> 봄이 왔다

안상현 | 입력 : 2020/03/01 [23:02]

  © 金泰韻

안상현 

전 한국어 교사 / 현 칼럼니스트 (전남 곡성군 오곡면 출신)

 지구온난화와 환경오염으로 겨울이 많이 따뜻해지고 있다고는 해도 모든 생명체에게 여전히 겨울은 나기 힘든 계절임이 분명하다. 한파와 폭설이 이어지는 석 달간의 기간을 일부는 즐기기도 한다지만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견디고 버텨내야 하는 인고의 시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극히 공평하다. 마치 생로병사가 빈부귀천에 상관없이 누구나 순연히 받아들여야 할 한 인간으로서의 운명적 과정의 일부에 불과하듯이...

 허나 봄은 분명 누구에게나 환영받는 계절이다. 볕이 늘고 기온은 오르며 싱그러운 꽃이 지천에 피어 어딜 가든 아름다운 경치가 쉬이 눈에 들어오고 가슴 속에는 향긋한 봄 향기를 흠뻑 담기 위해 들숨과 날숨을 깊이 내쉬게 된다. 개나리가 성질이 급한지 제일 먼저 꽃 동이를 피어올리고 그 다음에는 진달래가 제 순서를 지켜 온 산야를 붉은 빛과 보랏빛의 중간색으로 물들인다. 그리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벚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게 되는데 지역마다 차이는 있긴 하지만 보통 3월 하순에서 4월 중순까지가 절정이고 십여 일이면 이 벚꽃은 미련 없이 시들고 만다. 기다림은 너무나 긴데 나타나고 보여줌은 너무나 짧아서 살짝 얄밉기도 하지만 가장 강렬한 황홀경을 가장 짧은 시간에 보여주는 꽃 중의 꽃이라 가히 말하고 싶다.

 내 고향 곡성에서 살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일 때문에 전북 정읍에서 거주하고 있다. 예전에는 벚꽃 철이 되어도 그냥 운전하는 동안만 곁눈질로 즐겼는데 이 곳 정읍은 정읍 천에서 내장산까지 이어지는 4킬로미터의 벚꽃길이 가히 장관이어서 해마다 벚꽃이 만발할 때면 아무리 바빠도 일부러 며칠 짬을 내어 봄의 향연을 만끽하게 된다. 매년 3월 말부터 4월 초 사이 ‘정읍 벚꽃 축제’가 열리는데 다양한 공연과 문화행사가 일주일간 계속되어 낮에는 벚꽃의 자태를 감상하고 저녁에는 공짜로 음악공연과 전시회를 감상하는 호사(?)를 누리기도 한다. 몇 년 전부터는 벚꽃 길 주변에 색색의 야간 등을 설치해 놓아 인공 빛에 반사되는 벚꽃의 모습이 낮보다 더 아름다울 때도 있으니 주간에 시간을 못 내는 타 지역 주민들은 저녁이나 밤에라도 꼭 잠깐의 시간을 내어 정읍의 벚꽃을 감상해보라고 권하는 바이다.

 벚꽃이 눈물을 흩뿌리듯이 우수수 지며 슬피 이별하여도 나는 이별이라 여기지 않고 내년에 꼭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그리고 아쉬워 할 겨를도 없이 바로 인근의 고창 선운산으로 향한다. 선운산에서는 유채꽃의 산통(?)이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다. 꽃은 만개한 후가 아니라 피기 직전의 모습이 가장 절정이라고 어느 철학자가 말했던가? 나 역시 그것을 잘 알기에 서둘러 선운산으로 향하고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벚꽃과 유채꽃으로부터 귀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꽃은 하나의 종으로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군집으로서 집단의 생을 유지해나가는 것처럼 하나의 꽃이 지면서 다른 꽃을 불러내고, 불림을 받아 세상에 나온 그 꽃 역시 멸하기 전 자신의 생을 이어받을 어느 하나를 반드시 점찍어 놓는다는 것을. 꽃끼리는 서로 약속도 하고 다짐도 받는다. ‘최대한 오래 머물다 가되 이 세상에 지루함을 주지는 말자.’ ‘싱그럽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자태를 너무 스스로 뽐내지 않아도 봄은 수많은 이를 꽃 앞으로 불러 모으니 그저 있는 그 자리에서 그 모습으로 자기다움만 잘 지킬 것.’

 나는 봄이 참으로 좋다. 어렸을 적에는 부산해지고 해야 할 일이 많아지는 계절이라 좋아하는 철이 아니었는데 나이가 들수록 봄이 좋다. 모든 것이 죽은 것 같았던 대지, 모든 것이 없어진 줄 알았던 무(無)의 대지에 다시 새 생명이 움트고 싹을 틔워내는 것을 보면 보잘 것 없는 나도 조그만 희망을 품게 되고 용기를 가지게 된다. 밖은 북풍한설이어도 안에는 온기를 머금어 한없는 자애로움으로 품어주는 대지가 있고 그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인고의 시간을 버텨낸 강한 의지의 생물체들이 있기에 언젠가는 꽃과 열매를 맺어내는 것이리라. 아직 나를 품어줄 수 있는 분을 만나지 못했지만 나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를 본받으며 나의 때를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놓지 않으리라.

 봄나들이도 맘껏 즐길 수 있고 삶의 성찰도 할 수 있는 새 봄. 봄 앞에 붙는 수식어가 ‘헌’이 아니라 항상 ‘새’임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봄이 없으면 여름이 없고 여름이 오지 않으면 가을과 겨울도 없다. 봄부터 잘 즐겨보자. 봄을 잘 즐기고 봄의 참 아름다움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이는 겨울의 삭막함도 삶의 여유로움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대 철인(大 哲人)으로 언젠가는 되어 있을 것이다. 봄이 왔다. 일단 나가고 보자. 내가 봄을 기다려 온 것이 아니라 봄이 우리를 불러내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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